우리 아이는 얼마나 클까?
모든 부모의 관심사이다. 시쳇말로 얼짱이니, 몸짱이니 하는 외모에 무관심한 부모도 아이의 키 이야기에는 귀를 기울인다. 아이의 최종 키를 쉽게 예측해볼 수 있는 공식이 있다. 아버지와 어머니 키를 더한 후 2로 나누면 평균치가 나온다. 여기에 6.5㎝를 더하면 남자아이의 최종 키가 된다. 그 평균치에서 6.5㎝를 빼면 여자아이의 최종 신장이다. 예를 들어 아버지 키가 1백80㎝이고, 어머니 키가 1백60㎝라면 부모의 평균 키는 1백70㎝이다. 이 부모의 아들은 1백76.5㎝, 딸은 1백63.5㎝까지 자랄 것으로 예상한다. 아이 신장 예측에 부모의 키를 기본으로 삼은 이유는 유전이 신장에 미치는 비중이 크기 때문이다. 유전적 요인으로는 인종·민족·가계·연령·성별 등이 있다. 유한욱 서울아산병원 소아청소년병원장은 “유전이 키에 미치는 비율은 70%에 이른다. 대체로 부모의 키가 크면 자식도 크다. 성장 장애가 있는 아이를 둔 부모에게 의사가 출생할 때부터 작았는지, 가족이 뒤늦게 크는 형인지, 가족의 키가 본래 작은지를 물어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라고 설명했다.
태어날 때부터 키는 어느 정도 결정된다. 아이의 키가 작으면 부모는 자신의 탓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자책할 필요는 없다. 성장 환경에 따라 남자아이는 ±10㎝ 정도 키 차이가 날 수 있다. 위 사례에서 남자아이는 1백76.5㎝까지 클 것으로 예상되지만, 환경에 따라 1백66.5 또는 1백86.5㎝까지 클 확률이 95%이다. 여자아이에게 환경 요인에 의한 차이는 ±8.5㎝이다. 1백63.5㎝까지 성장할 것으로 예측되는 여자아이는 1백55~1백72㎝ 범위에 든다. 채현욱 연세세브란스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같은 민족이지만 북한 사람의 키는 남한 사람에 비해 평균 10㎝ 정도 작다. 영양·운동·수면 등 환경적 요인이 키에 미치는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 과거보다 최근에 환경적 요인이 성장에 더 영향을 준다는 연구가 활발하다”라며 성장에 미치는 환경적 요인을 강조했다.
키 크는 환경을 만들어주기 위해서는 먼저 성장 주기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시기마다 마련해야 할 성장 환경이 다르기 때문이다. 키는 일반적으로 만 16~18세까지 자란다. 이 시기까지 키는 꾸준히 자라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빨리 자라는 시기와 더디게 자라는 시기가 있다. 성장 속도에 따라 키 크는 시기를 네 단계로 나누어볼 수 있다.
만 2세까지가 성장·발달에 결정적 시기
![]() | ||
만 3세 이후부터 사춘기 전까지는 조금 더디게 성장하는 시기이다. 유치원과 초등학교 저학년에 해당하는 이 시기에는 1년에 4~6㎝ 정도 자란다. 흔히 아이는 잘 먹고 잘 뛰어놀면 건강해진다고 한다. 이 시기에 딱 들어맞는 말이다. 하루에 30분 정도 햇볕을 쬐면서 많이 뛰어놀게 하고 밤에는 푹 재워야 한다. 다양한 운동으로 체력을 키워 잔병치레를 예방해야 한다. 잔병치레가 잦으면 식욕이 떨어진다. 한창 에너지가 필요한 나이에 영양 공급이 원활하지 않으면 성장과 발육에 장애가 생긴다. 음식의 양과 질은 부모가 신경을 써야 하며 인스턴트 식품은 피해야 한다. 특히 칼슘, 단백질, 요오드, 비타민D, 비타민K 등을 충분히 섭취하면 좋다. 종합 비타민제를 먹일 필요는 없다. 해조류, 녹색 채소, 콩, 우유 등 다양한 음식을 골고루 먹는 식습관을 형성시켜야 한다.
사춘기가 시작되는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만 15~16세까지는 제2 성장 급성기라고 할 정도로 키가 빠르게 자란다. 사춘기가 시작되는 시점은 성별에 따라 다르다. 여자아이는 남자아이보다 그 시기가 2년 정도 빠른 만 10~11세부터 사춘기가 시작된다. 유방이 발달하고 음모가 나온다. 이때부터 초경 전 2~3년 사이에 키가 많이 자라는데 1년에 평균 10㎝ 이상 큰다. 초경은 평균 만 12~13세에 시작한다. 초경 후 2~3년 동안 키 크는 속도는 둔화한다. 3년 동안 약 6㎝만 자라며, 대신 체중이 증가한다. 중학교 2~3학년이 되면 여자아이의 성장은 거의 멈춘다.
만 12세에 사춘기를 맞는 남자아이는 고환이 4ml(어른 중지 끝마디 정도 크기)로 커지며 음모도 생긴다. 이 시기에 남자아이는 키가 연간 8~12㎝씩 자란다. 턱수염과 겨드랑이 털이 난 후부터 성장 속도가 둔화하며 2~3년 후인 고등학교 1~2학년에는 키 성장이 거의 멈춘다.
이 시기에는 운동과 수면에 특히 신경 써야 한다. 키가 크려면 뼈와 근육의 길이가 길어져야 한다. 특히 뼈 사이에 있는 부드러운 연골 조직, 즉 성장판에서 세포분열 등을 거쳐 튼튼한 뼈가 된다. 성장판은 어깨, 팔꿈치, 손목, 손가락, 척추, 골반, 대퇴골, 정강이뼈, 발목, 발뒤꿈치, 발가락 등 길게 생긴 뼈 사이에 있다. 성장판을 자극하고 근육을 발달시키는 데에 가장 좋은 것은 운동이다. 성장호르몬 분비를 촉진하기 위해서도 운동과 숙면은 필수이다. 흔히 줄넘기·농구는 키 크는 데 도움이 되고 역도나 태권도는 그 반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그러나 사실은 다르다. 운동 종목에 관계없이 모든 운동은 성장에 도움이 된다. 다만, 아이가 싫증 내지 않고 오랫동안 습관적으로 할 수 있는 운동을 선택하면 된다. 가능하면 산소 소비가 많은 유산소 운동과 땅에 발을 딛고 하는 운동이 좋다. 특히 달리기·줄넘기와 같이 중력을 받는 운동은 성장판을 적당히 자극해서 성장은 물론 골밀도도 증가시킨다. 몸무게가 많이 나가면 수영이나 앉아서 하는 자전거 페달 밟기가 바람직하다.
지나친 운동은 피해야 한다. 끼니까지 거르면서 운동하는 것도 역효과를 가져온다. 즉, 성장에 필요한 에너지까지 운동에 쏟으면 오히려 성장에 방해가 된다. 일상 활동을 정상적으로 할 수 있을 정도로 운동 강도를 정할 필요가 있다. 운동 시간은 하루에 30~60분 동안 땀이 날 정도로 1주일에 3~4회가 적당하다. 이 시기에는 운동을 3단계로 나누면 좋다. 최초 10분은 스트레칭이나 가벼운 구보로 워밍업을 하는 시간이다. 이후 30~40분 동안 유산소 운동 등 본격적인 운동을 한다. 나머지 10분 동안은 스트레칭이나 근육 이완 운동으로 마무리한다.
사춘기 아이는 4단계로 나누어 운동을 하면 된다. 유산소 운동과 같은 본격적인 운동을 시작하기 전에 약 15분 동안 근력 운동을 추가한다. 근력 운동에는 아령이나 모래 주머니를 이용할 수 있고, 팔 굽혀 펴기나 윗몸 일으키기도 좋다. 운동 시간은 식후 1~2시간 이후가 좋으며 잠들기 전에는 피한다. 잠은 최소 6~7시간은 재워야 하며,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한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부신피질호르몬이 분비되는데, 이는 성장호르몬 분비를 감소시키고 성장판의 연골세포 증식도 억제한다. 김순기 인하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이 시기에 있는 아이들은 학업 때문에 운동과 수면 시간이 절대 부족하다. 성장에 아주 좋지 않은 환경이다. 학업으로 스트레스도 많이 받는 시기여서 신체적·정신적 건강 이상이 우려된다. 아이 성장에 좋지 않은 환경을 어른이 강요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라고 말했다.
남자는 고1~2, 여자는 중2~3 때 성장판 닫혀
사춘기가 지나면 성장 속도는 급격히 떨어진다. 사춘기 이후 여자아이는 만 14~16세, 남자아이는 만 16~18세까지 연간 2㎝ 미만으로 자라면서 성인 신장에 도달한다. 흔히 성장판이 닫힌다고 표현하는 시기이다. 사춘기가 시작되어 성호르몬 분비가 늘어나면 성장판 연골 조직이 딱딱한 뼈로 바뀌기 시작한다. 이 성장판이 없어지면 더 이상 세포 증식이 일어나지 못해 키 성장이 멈춘다. 사람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대략 여자아이는 중학교 2~3학년, 남자아이는 고등학교 1~2학년 무렵에 성장판이 닫힌다. 진동규 삼성서울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기본에 충실한 것이 가장 중요하다. 음식을 골고루 먹고, 적절한 운동을 하는 것이 왕도이다. 다만, 성장 속도가 1년에 5㎝ 이하이거나, 또래 100명 중 3명 이내로 키가 작거나, 사춘기가 일찍 찾아오거나 사춘기가 시작되어도 키가 작으면 소아과를 찾아 정확한 원인을 알아보는 것이 좋다”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부모의 따뜻한 사랑이 아이 성장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부모의 따뜻한 사랑을 받지 못한 채 집단으로 수용되어 있는 아이를 양자로 입양해 좋은 환경에서 키웠더니 성장호르몬 분비가 촉진되고 성장이 왕성해졌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또, 키보다 비만에 더 신경을 써야 한다. 질병과는 비만이 상관관계가 깊다. 키는 정상 범위 정도라면 안심이다. 인위적으로 더 키울 수는 없다. 단, 저성장이 의심되는 아이는 전문의의 진단을 받아 치료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치료는 사춘기 이전에 받지 않으면 기회가 없다.